정확히 언제부터 라디오 헤드를 알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아마
초등학교 고학년 때? 이 당시에는 지금처럼 유튜브 플레이리스트 이런 게
없었어서 좋은 음악들을 추천해 주는 네이버 블로그가 많았음. 그래서 매달
노래 추천을 콘텐츠로 주기적으로 올라오는 블로그가 많았는데 노래 추천
잘하는 블로그는 인기가 많았고 매 게시물마다 사람들이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곡을 추천하는 댓글이 100개 이상 쌓이고 했음. 그리고 블로그 주인장이 그
곡을 들어보고 좋으면 곡 추천에 넣고 그 댓글 작성자 닉네임은 같이 적어주는
방식으로 운영되었음. 그래서 나도 댓글로 노래 추천하고 그랬는데 한 번
주인장한테 픽 되어서 곡 추천 게시물에 올라갔던 적도 있음 ㅋㅋ 그렇게
네이버에 항상 이달의 추천 노래를 검색해서 블로그들 탐방하며 음악을
디깅했는데 거기서 라디오 헤드의 creep 처음 알게 되었던 거 같음. 처음에
라디오 헤드라는 밴드명 보고 띠용?하면서 뭔 밴드 이름이 라디오 대가리야?
이런 생각 하면서 유튜브 들어가서 creep 팬 메이드 애니메이션 뮤비로 처음
보게 됨. 그 주인공이 뭔 돼지인데 학교 친구들 사이에서 겉돌고 자신감 없고
쭈굴이처럼 막 행동하는 돼지가 나오고 그 배경 노래로 creep 나오는
영상이었음. 근데 creep은 큰 감흥은 없었고 그냥 이런 노래가 있구나 하면서
넘겼음.
그러다 초6 때 누나랑 나랑 세뱃돈 모아서 7만원짜리 터치가 되는 mp3를
샀었음. 그래서 막 신나서 막 mp3에 담을 노래 디깅하다 어쩌다 라디오 헤드의
no surprises를 처음 딱 듣게 됨. 근데 첫 인트로 듣자마자 새로운 음악적
세계를 본 듯한, 그러니깐 이런 종류의 음악은 처음인데? 싶은 충격을 받음.
그런데 또 음악이 존나 좋아. 그래서 그 mp3로 no surprises 엄청 들었던
기억이 남. 근데 ok computer 앨범 전부 다 명곡인데 특히 paranoid android 이
곡의 에너지랑 조니 기타 솔로는 진짜 들을 때 마다 감탄스러움. 그냥 좆 됨
진짜. 그리고 조니 기타 진짜 미친 거 아님? 그냥 테크닉이 좋은 것뿐만 아니라
솔로잉 뽕맛이 진깨 개좆됨. 역대 밴드 기타리스트들 중에서도 진짜 다섯
손가락 안 에는 들어갈 듯.
라디오 헤드 1집 들어보면 큰 감흥보다는 그냥 새로운 신인 밴드가 첫 정규
앨범 낸 정도? 그 정도로 느껴지는데 놀라운 게 2집 부터는 진짜 경쿠 3배 빨고
레이드 돌고 온 것처럼 레벨업이 존나 되어 있는게 신기함. 그것도 2년 만에.
1집이랑 같은 밴드 맞나 싶을 정도로 음악적으로나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나
너무 레벨업이 되어서 온 거임. 1집 정규 발매 후 creep으로 비교적 빠르게
인기를 얻었다 보니 빠른 변화에 대한 부적응, 혼란스러움과 부담 등등 이런
부정적인 것들이 2년 만에 빠른 성장을 하게 도와준 건가? 싶은 생각도 들고.
1집 발매 후 라디오 헤드 공연 라이브 영상 보면 톰 요크가 엄청
혼란스러워하는 모습 보이는데 이게 갑자기 생긴 인기 때문인지 아직 어려서
미성숙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1집 활동 후 2집 활동 보면 내면적으로
많이 성장하고 안정된 거 같음. 인터뷰에서도 본인의 1집 활동 때를 7살짜리
어린아이 같았다고 말하기도 했었음.
라디오 헤드 2016년까지 앨범을 내며 활동을 했던 게 참 신기하네.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밴드가 하고 싶은 말과 에너지가 고갈되지 않고 남아있었다는 게
신기함. 특히 톰 요크 아저씨는 아직도 전자 음악 만들고 the smile로 밴드
활동하는데 보면 참 30년 동안 하고 싶은 얘기와 풀고 싶은 감정을 음악으로
분출했는데도 아직도 분출하고 싶은 게, 하고 싶은 말이 남아있다는 것도
신기하면서 대단하고 부럽기도 하네.
근데 톰 요크 아저씨는 저 정도로 사회적, 음악적, 경제적 등 많은 부분들에서
이미 옛날부터 풍족하고 음악도 30년 넘게 해왔는데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동력으로 살아갈까? 밴드 The smile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냥 뭐라도 해야지
싶어서 하는 건지 아니면 아직도 음악이 재밌어서 하는 건지 궁금함. 물론 톰
요크가 음악을 오래 했다고 하기 싫다거나 그럴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음악을 만든다는 건 괴로움도 많은 것인데 그걸 계속할 만큼 아직 재미가 있는
걸까? 아니면 심심해서? 아니면 이제 너무 오래 해서 도가 터서 음악을 만드는
데 그 괴로움마저 즐거움으로 만들 수 있는 건가? 이렇게 여러 방면에서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항상 궁금한 게 이제 인생이라는 게임에서 여러 콘텐츠들을
즐겼고, 다음 콘텐츠로 넘어가야 하는데 앵간한 것들은 다 느껴봐서 지루하지
않을까? 이미 lv2000 토끼공듀인데 감흥을 줄만한 콘텐츠가 아직 남아있나?
다음 챕터를 어떻게 나아갈 것인지 목표를 정해야 움직일 동력이 생길 거
같은데 그 목표를 정하는 게 너무 어려울 듯. 그냥 잔잔하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건가? 그래서 톰 요크 아저씨도 뮤비에 나와서 춤 추고 연기도 하고 전자 음악,
디제잉 등등 다양한 것들도 하는거겠지? 최근에 라디오 헤드로 유럽 투어
돌던데 아직까지도 무대에 서는 게 재밌는 듯. 막 멤버들이랑 즐거워하며
연주하고 놀던데. 나도 늙어서도 그렇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걸 계속하고
싶다.
근데 음악이라는 것도 역사가 너무 오래되었고, 이제 앵간히 나올 만큼 나온 거
같고, 좋은 음악을 들어도, 일상 속의 소리를 집중해서 듣고 그것들을 음악으로
치환하는 것도 이제 너무 뻔하지 않나? 새로운 문법이 없고 계속 그 안에서
돌고 돈다는 생각을 자주 함. 물론 음악뿐만 아니라 글, 영화, 패션 등등 다른
예술 분야도 마찬가지. VR이든 딥다이브든 기술을 통해 초현실적인 감각을 진짜
실감 나게 전달해 주는 기술이 아직 나오기 전까지는 어릴 때 느꼈던 것 같은
충격과 즐거움을 다시 느끼기는 어려운걸까? 나를 웅장하게 해줄 수 있는
무언가가 없냐 이말이다...
참고 -
[라디오 헤드 곡 분석 블로그]
2025년 12월 17일